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속의 꾸며낸 자아가 현실에 나타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유쾌하게 넘나드는 창작 뮤지컬 ‘차미’가 최근 대학로 무대에 세 번째 시즌으로 돌아왔다. 관객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함께, SNS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지는 이 작품은 현실을 반영한 기발한 설정과 생동감 넘치는 연출로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뮤지컬 ‘차미’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취업을 준비하는 소심한 청년 차미호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인정받고 싶지만 마음을 쉽게 표현하지 못하는 차미호는 SNS 상에 완벽한 외모와 성격을 지닌 또 다른 자아 ‘차미(Cha_ME)’를 만들어 활동한다. 그는 실제보다 나은 모습으로 꾸민 ‘차미’ 계정을 통해 타인의 ‘좋아요’와 댓글로 위안을 받으며 하루하루를 버텨간다.

 

하지만 어느 날, 스마트폰 속에만 존재하던 이상적 자아 ‘차미’가 현실 세계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인 전개에 들어선다. SNS 속 캐릭터답게 화려한 외모와 넘치는 자신감을 갖춘 ‘차미’는 차미호의 연애는 물론 취업까지 척척 해결해준다. 처음엔 당혹스러워하던 차미호는 점차 ‘차미’의 존재에 기대며 자신의 부족한 현실을 보완받고 있다고 느낀다.

 

무대는 SNS 세상을 연상시키는 구조로 꾸며져 있다. 스마트폰을 닮은 직사각형 LED 스크린이 정중앙에 배치되고, 팝 컬러의 조명이 공간을 감싸며 시각적인 몰입감을 더한다. 등장인물은 총 4명으로 구성돼 있으며, 차미호와 ‘차미’ 외에도 차미호의 오랜 친구 김고대, 짝사랑 상대 오진혁이 극의 흐름을 함께 이끈다. 배우들은 팝, 발라드, 댄스 등 장르를 넘나드는 다양한 넘버와 생기 넘치는 안무를 선보이며 무대를 활기차게 채운다.

 

 

 

작품은 중반 이후, 차미호가 점점 자신의 삶에 주도권을 잃고 ‘차미’에게 휘둘리게 되면서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결국 그는 자신이 만들어낸 이상적 자아로 인해 오히려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위기를 맞는다. 이 과정에서 관객은 화려한 SNS 이면에 숨겨진 허상과 자기애 부족의 문제를 함께 들여다보게 된다. 극은 차미호가 ‘차미’로부터 독립해 다시 자신의 존재를 찾아가는 여정에 집중하며,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하는 과정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반전과 코믹한 요소를 적절히 섞어 극적인 몰입을 높이며, 무거운 주제를 부담 없이 풀어낸 점도 이 작품의 강점이다.

 

‘차미’는 2020년 정식 초연 이후 꾸준히 발전해왔다. 우란문화재단의 창작 지원 프로그램 ‘시야 플랫폼’을 통해 개발됐으며, 두 차례 트라이아웃 공연을 거쳐 정식 무대에 올랐다. 2021년에는 일본 도쿄와 오사카에서 라이선스 공연을 진행하며 해외 진출도 경험했다. 2022년 재연을 거쳐 올해 세 번째 시즌으로 돌아온 이번 공연은 초연보다 더욱 세련된 구성과 현대적 감각을 입었다.

 

연출을 맡은 이수인은 “처음 공연이 올라온 지 시간이 꽤 흐른 만큼, 현시대 관객의 감수성을 반영해 일부 대사와 연출을 수정했다”고 밝혔다. 실제 배우들의 SNS 게시물을 배경으로 활용하거나 안무 장면을 보강해 시각적 즐거움을 더했다는 설명이다. SNS의 시각적 구조를 현실 공간에 옮긴 무대 연출은 특히 젊은 세대에게 익숙하고 친근하게 다가온다.

 

이번 시즌은 8월 24일까지 대학로 TOM 1관에서 관객을 맞는다. 인터미션 없이 110분간 진행되는 공연은 빠른 호흡과 몰입감 있는 전개로 지루할 틈 없이 이어진다. 차미호 역은 임예진, 홍나현, 이재림, 해일리가 맡았고, ‘차미’ 역에는 이봄소리, 정우연, 박새힘, 이은정이 더블 캐스팅됐다. 김고대 역에는 정욱진, 조환지, 황순종, 박희준이, 오진혁 역은 서동진, 김준영, 윤준협이 출연한다.

 

뮤지컬 ‘차미’는 기술과 이미지가 지배하는 시대에 진정한 자아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SNS 속 ‘좋아요’와 ‘팔로워’에 휘둘리는 삶, 그 안에서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한 노력,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는 용기를 이야기하는 이 작품은 화려한 무대와 경쾌한 음악 속에서도 깊은 울림을 남긴다. SNS 세상 속에서 스스로를 꾸미고 감추는 데 익숙해진 현대인들에게, ‘차미’는 진짜 나로 살아가는 삶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무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