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쳐Life
전석 매진 신화의 창극, 이번엔 안평대군을 노래한다
스크린을 장악한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계유정난이라는 비극적 역사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영화가 조카 단종의 마지막을 그리며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동안, 무대에서는 같은 사건을 전혀 다른 인물의 시선으로 풀어낸 창극 '보허자'가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이 작품은 수양대군(세조)의 칼날 아래 스러져간 비운의 왕자, 안평대군이 사실은 살아남았다는 도발적인 상상에서 출발한다. 역사에 단 한 줄 명확히 기록되지 않은 안평대군의 최후에 작가적 상상력을 덧입혀, 비극 이후의 삶을 살아내는 인물들의 회한과 무상함을 그린다. 계유정난 27년 뒤, 정체를 숨긴 채 나타난 안평대군이 과거의 인연들과 함께 자신의 꿈이었던 '몽유도원도'를 찾아 떠나는 여정이 극의 중심이다.

작품의 제목 '보허자(步虛子)'는 '허공을 걷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 궁중음악의 이름에서 가져왔다. 이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 속에서 위태롭게 살아가는 인간의 운명을 상징한다. 비극 그 자체의 참혹함보다, 모든 것을 잃고 폐허 위에 남겨진 자들이 품는 '이룰 수 없는 꿈'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깊은 공감과 위로를 건넨다.
'왕과 사는 남자'가 단종의 비극에 집중했다면, '보허자'는 왕좌를 향해 폭주했던 형 수양과 예술을 사랑했던 풍류객 동생 안평, 두 형제의 엇갈린 운명에 초점을 맞춘다. 영화의 감동을 색다른 방식으로 이어가고 싶은 관객에게 창극만이 가진 압도적인 소리와 미학적 경험을 선사할 최적의 선택지인 셈이다.

2025년 초연 당시 전 회차 매진 신화를 썼던 이 작품은 더욱 세밀하게 다듬어져 돌아왔다. 특히 국립창극단 간판스타였던 소리꾼 김준수와 유태평양이 각각 안평과 안견 역으로 다시 뭉쳐 기대를 더한다. 거문고, 생황 등 전통 악기와 편종, 편경 등 궁중 악기가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웅장하고 서정적인 음악은 극의 몰입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영화와는 또 다른 결의 감동을 선사할 창극 '보허자'는 오는 19일부터 29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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